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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원장은 사퇴하지 않을 수 있었다. 빠른 시간 안에 복수정답을 인정하고 성적을 수정해줬더라면..
그러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복수정답 인정 후 몰고올 혼란과 혼돈이 무서웠기 때문이다.
평가원장은 자기 목이 달린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치자.
그러나 어느날 KBS뉴스에나온 한 변호사. 학부모와 학생의 집단소송 전망을 묻는 질문에 대해,

법원은 복수정답 인정이 가져올 혼란을 고려해 판결을 내릴 것으로 보입니다
순간, 두꺼운 유리벽에 머리를 찧은 느낌이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말이 엘리트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 있는 나라였다. 진실보다, 일의 옳고 그름보다, 무엇보다 학생들 개개인의 인생보다, 사회혼란이, 보다 정확히 말하면 통치 권위의 흔들림이 더 중요한 나라였다. 이런 의도를 노골적으로 떳떳하게 밝힐 수 있는 나라였다.

'우리'나라는 항상 그렇다. 혼란이 무서워 인권을 짓밟고, 시위를 폭력진압하고, 네티즌의 UCC도 규제하는 나라. 이건 우리 시민의 책임도 크다. 우리는 다들 혼란에 대한 신경질적 강박을 공유하고 있다. 구조화된 차량정체 현상에 대한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놓았다가, 누군가 절박한 마음에 길 막고 시위라도 할라치면 시위자에게 모든 불만을 쏟아놓는다. 그러나 '사회혼란=악'이라는 공식은 원래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다. 통치자들이 심어놓은 것이지..

이 문제는 우리 교육의 가장 큰 약점과도 일맥상통한다. 바로 '정답'만 인정하고 주입하는 교육 말이다. 상상력이 채 자라기도 전에, 가지를 치고 잎을 자르고 다듬으려고만 하는 교육. 논술마저 쪽집게가 통하는 그런 입시.
글쓰기와 수학 문제풀이가 진짜 재밌는 건 바로 혼란과 혼돈 때문이다. 수학 한문제를 풀기 위해 이래 접근해보고, 저래 접근해보고, 노트 몇 페이지를 쓰고 났을 때의 뿌듯함. 해답을 찾건 못찾았건, 이렇게 문제를 풀어본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의 차이는 그 다음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드러난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자체문제해결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혼란에 대한 두려움, 강박과 회피증세를 고쳐야만 할 것이다. 2만불 번다고 선진국 다 됐다고 얘기하는 것보다는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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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