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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조용구 부장판사)는 14일 금창태 전 시사저널 사장이 “삼성 관련 기사를 편집국장 몰래 삭제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했다”며 한겨레신문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심과 같이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금씨가 편집국장에게 통보하지 않고 직접 기사 삭제를 지시한 사실이 인정되며 한겨레21 등이 쓴 칼럼이나 논평이 대체로 진실에 부합해 배상 책임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1심 판결이 적합하다”고 밝혔다.

금 전 사장은 2006년 6월 시사저널 지면에서 삼성그룹 관련 기사가 삭제된 것에 대해 한겨레21 등이 비판적 논조로 칼럼을 쓰자 명예훼손에 대해 3억5000만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cgapc@fnnews.com최갑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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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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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최초의 여성 임원"
5년 전 화려하게 국내 대기업에 입성했다가 정말 알맞은 시기에 미국으로 되돌아간 이현정 상무의 에세이.
아기와 함께 이번 연휴를 보람있게 만들어줬다.

입사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부분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연봉, 비전, 복지 등...
나의 경우 지금 입사한 회사를 결정했을 때 가장 염두에 뒀던 부분은 바로 조직문화였다. 내가 생각했던 조직문화가 실제와 100%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금도 한 회사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향후 발전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끔 하는 것은 매출 같은 수치보다는 바로 잘 보이지 않는 조직문화라고 생각한다.
이 상무는 이 책을 통해 창조경영을 외치는 삼성그룹이 실제로 창조경영과는 맞지 않는 조직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가족친화적 문화를 외치는 대부분의 기업은 반대로 가족친화적이지 않은 기업문화를 깊숙히 내재하고 있는 것처럼...

지나치게 수직적이고, 정치적이고, 내부인맥을 중시하며, 배타적인 기업문화는 결국 경쟁력을 깎아먹는다. 누구나 알지만, 대부분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거나 포기한 문제들을 이 상무는 통렬하게 비판하고 다시 한번 조직문화 혁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우리나라 기업문화에 대한 '파리의 택시운전사'라고 할 수 있는 책. 패기있는 젊은 직장인과 함께 기업 임원들도 함께 읽고 토론해볼 필요가 있는 메시지라고 본다. 내가 속한 회사에 대해서도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다. 한 페이지 넘기는데 몇시간이 걸리기도 할 만큼 생각할 거리가 있다!!

나는 이 책을 곧 한번 더 읽을 예정이다. 이건 이 책이 기업문화 뿐 아니라 부모로서의 고민도 함께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부모로서의 그의 고민은 기업임원으로서의 고민과 단절되지 않는다. 그의 부부생활과 자녀양육 얘기에도 눈에 띄는 참신한 정책들이 많았다. 참 쉽지 않게 사는 사람이다. 이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메시지는 사회통념에 자신을 맡겨 대충 살기보다 불만을 갖고 대책을 만들어가는 '지적인 삶'을 추구하라는 것.
이 책이 매력있는 건 그의 말처럼 자기 세계관을 갖고 지적으로 삶을 영위하는 성숙한 인간을 더욱 찾아보기 힘들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요새 경영서적은 누구나 돈을 벌라고 얘기하지만 그는 다르게 살라고, 사는 방식에도 블루오션은 있다고 주장한다. 가끔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위트는 책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읽고 나서 더 열심히 살고픈 의욕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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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스

최근 한겨레와 한국일보 간 칼럼과 사설이 논쟁에 휘말렸다.
바로 고려대 교우회 100년사와 관련해서다.
한겨레 사설 '고대교우회의 빗나간 교우 사랑'(1월9일자)은 고대교우회 100년사의 도를 넘은 명비어천가를 비판하며 한국 3대 마피아 중 하나로 불리는 고대 교우회가 이명박 당선을 계기로 그 세력을 확대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한국일보 강병태 수석 논설위원은 '마피아 본색'(1월14일자)이란 컬럼을 통해 관련 한겨레 사설은 고려대교우회의 낭설 하나 가지고 모든 고대출신들을 자신의 세력확장을 계획적으로 의도하는 권력집단으로 과장 모독했다며, 수구 찌라시를 욕하다 선동 삐라로 전락하는 한겨레의 모습이 보기 딱하다고 일갈했다.

이 논란을 두고 한국일보 내부에서도 갑론을박이 있었다. 공개적인 후배의 물음에 대해 강 위원이 공개적으로 해명글을 내기도 했다. 나도 처음엔 강 위원이 이명박과 고려대를 옹호한다고 생각했으나 그건 아니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고대교우회의 글이 촌스럽고 황당하다는 데에는 두 컬럼 모두 의견을 같이 한다.

그러나, 우선 강 위원의 문제 인식 자체는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분명 모든 고대, 해병대, 대구경북 출신들이 패거리문화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권력중심에 가까운 몇몇이 이 같은 잣대로 너와 나를 구분하고 세력 확장을 꾀한 것은 분명한 역사적 진실이다. 한겨레가 없는 사실을 있다고 하지는 않은 셈이다. 이명박이 교우회 행사에 가서 한 얘기들을 보라. 눈 앞에 보이는 패거리 짓거리를 두고 이를 무시하기란 신문으로서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거다. 뿐만 아니라, 한겨레 사설의 주어는 모두 '고대교우회는'이지 '고대 출신'이 아니었다. 따라서 모든 고대출신들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강 위원의 말은 근거가 없다.

기자로 밥벌이를 한지 30년이 됐건 1년이 됐건 독자의 평가 앞에서는 다를 게 없다고 본다. 많은 독자들이 자신의 논지와 달리 생각했다면,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정성껏 해명할 일이지 "감히 내권위에 도전을"이라며 핏대세울 일은 아니다. 이제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엘리트주의적 언론관은 버려야 할 때라는 사실을 이번 사건을 통해 확실히 깨달았다.

그와는 별개로, 강 위원의 해명을 통해 대중의 여론에 무관하게 해야할 말은 하는 것이 언론인의 자세라는 것, 사설은 바로 신문사 소유주의 것이니 사설과 기사가 따로는 노는 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얘기 등은 평소 궁금증에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소중한 조언이었다.



<논쟁이 된 기사>
**한국일보 강병태 수석논설위원의 '마피아 본색'(1월14일자)

마피아는 19세기 중반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 섬의 100여 지역 범죄집단, 이른바 패밀리들이 만든 느슨한 비밀결사를 일컫는다. 저들끼리는 코사 노스트라(Cosa Nostra)라고 부른다.

‘our thing’ 또는 ‘same thing’이란 뜻이라니, 우리 편 또는 같은 편이라는 말인 듯하다. 이들이 널리 알려진 것은 뉴욕을 중심으로 미국 동부 이탈리아 이민사회에 다시 뿌리내린 데 따른 것이다. 마피아 패밀리들은 온갖 범죄영역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공권력을 제치고 대신하는 노릇까지 한다.

■이런 마피아의 본디 특색과 정체, 뭉뚱그려 본색에 관한 온라인 백과 Wikipedia의 풀이가 흥미롭다. 국가권력이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데서 비롯된 사회현상 또는 문화이다.

이때 마피아는 그저 범죄조직이 아니라 갈등과 분쟁의 조정자, 나아가 보호자를 자임하는 의식과 태도를 의미한다. 그 바탕은 과장된 자부심과 명예의식, 심지어 사회적 책임감이다. 공조직을 포함한 특정집단을 마피아로 부르는 것이 악의만은 아닌 것과 통한다.

■이런 마피아의 본디 특색과 정체, 뭉뚱그려 본색에 관한 온라인 백과 Wikipedia의 풀이가 흥미롭다. 국가권력이 사회적 약자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데서 비롯된 사회현상 또는 문화이다.

이때 마피아는 그저 범죄조직이 아니라 갈등과 분쟁의 조정자, 나아가 보호자를 자임하는 의식과 태도를 의미한다. 그 바탕은 과장된 자부심과 명예의식, 심지어 사회적 책임감이다. 공조직을 포함한 특정집단을 마피아로 부르는 것이 악의만은 아닌 것과 통한다.

■낡은 상식을 얘기한 것은 ‘고대교우회의 마피아 본색’이란 지난 주 한겨레신문 사설이 황당하고 천박하기 이를 데 없음을 일깨우기 위해서다. 해외 동포사회에서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 고대교우회의 유난한 결속력을 우스개 삼아 마피아에 빗댄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교우회가 펴낸 ‘100년사’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을 한껏 칭송하고, 그가 참석한 새해인사 모임이 ‘요란뻑적’ 했다고 해서 마치 국가권력 찬탈을 도모한 대역무도한 집단인양 매도한 것은 우습고도 개탄스럽다. 신문의 기본을 내팽개치고 짓밟은 난동, 난설(亂說)이다.

■나는 ‘원조 패밀리’라는 TK출신에 고려대를 나왔다. 또 연락장교로 해병 빨간 명찰을 단 적이 있어 애정을 갖고 있다. 그러나 어느 연분도 한겨레 사설이 떠든 ‘결속력, 목표의식, 실행력’으로 수많은 ‘형제급 동문’의 출세를 돕는다고 생각할 수 없다.

TK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 고대교우회 등으로 엇갈렸다 다시 만나기를 거듭하는 거대한 사회집단을 협소한 패밀리, 패거리의 틀에 얽어 넣는 것은 도착(倒錯)이고 착란이다.

악에 받친 듯한 말투와 해괴한 논리로 스스로 패거리 본색을 드러낸 것은 무너진 전선을 다시 형성하려는 시도일 수 있겠다. 그러나 전에도 지적했듯, 수구 ‘찌라시’를 욕하다 선동 ‘삐라’로 전락하는 것은 보기 딱하다.



**한겨레 사설 '고대 교우회의 빗나간 동문 사랑'(1월9일자)

한국 사회엔 3대 ‘패밀리’가 있다고 한다. 호남향우회, 해병전우회, 고려대 교우회가 그것이다. 굳이 서양 마피아에나 어울리는 ‘패밀리’ 호칭을 쓰는 이유는 결속력, 목표의식, 실행력이 다른 집단의 추종을 불허하기 때문일 게다. 그러나 한국에서 패밀리의 원조는 티케이(대구·경북)라고 해야 할 것이다. 티케이는 경부축 중심의 개발 과정에서 경제적 부를 쌓았고, 박정희 쿠데타 이래 30년 동안 우리 사회를 지배하면서 정치 권력을 독점하다시피 했다.

호남향우회는 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또 결속력이 강하다는 점에서 티케이와 비교된다. 그러나 정치·경제적으로 소외된 호남인들이 살아남고자, 혹은 최소한의 영향력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이루어진 결속이라는 점에선, 지배블록 티케이와는 성격이 근본적으로 다르다. 해병전우회도 사실 결속력만 강할 뿐 다른 패밀리와 성격이 다르다. 이들을 움직이는 건 정치·경제적 동인이 아니다. 이들을 묶어주는 건 험한 군 경험뿐이다.

그런 점에서 티케이와 가장 닮은 건 고대 교우회다. 다른 대학은 동창회 혹은 동문회라고 하지만, 고대는 특별히 교우회라는 이름을 쓴다. ‘같은 학교의 우애 있는 친구’라는 뜻이다. 단순한 동문이 아니라 형제급 동문인 것이다. 그러니 결속력은 강할 수밖에. 게다가 고대 출신은 대한민국 3대 학벌을 형성하고 있다. 입법부나 행정부 사법부는 물론 웬만한 회사에도 고대 교우회가 꾸려져 있지 않은 곳이 없다. 그런 막강 권력인맥이 형제급의 결속력을 유지하고 있으니, 패거리로선 전성기의 티케이가 부럽지 않다.

그럼에도 고대 교우회는 권력을 계속 더 확대하려 한다. 더 많은 명망가를 확충하고,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고, 각종 행사를 통해 결속을 도모하고, 그 인맥을 통해 교우의 출세를 돕는다. 6개월짜리 최고위 과정만 밟아도 교우로 인정하는 건 그 일환이다. 자연자원 정책과정을 수료했을 뿐인 심형래씨는 ‘세계로 뻗어가는 자랑스런 심 교우’다.

그런 고대 교우회가 이명박 교우의 당선 이후 ‘승리의 새벽’을 구가하고 있다. 창립 100돌을 맞아 펴낸 교우회 100년사에 실린, ‘명’비어천가는 압권이었다. 치졸하기 짝이 없는 문장은 한 오라기 지성의 흔적마저 지워 버렸다. 광신적 찬양과 선동이 넘치던 그 자리의 주인공은 이 당선인이었다. 패밀리의 일원으로서 그가 느낀 건 자부심일까 두려움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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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스

도무지 마음의 준비가 안되는 일이 있나보다. 어릴 적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는 일이나 치과 가는 일, 낯 뜨거운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이는 일이나 매를 맞는 일 등 지금까지 겁낼 만한 모든 일들은 어느 정도 미리 상상해보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아이가 생긴다는 건, 도무지 준비가 안된다. 역시 나고 죽는 일은 사람의 영역 밖의 일인가보다.

31일 오전 11시 쯤 아기를 낳으러 분만실에 들어간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는 이내 겁이 나기 시작했다. 겁의 정체가 무언고 가만 생각하니, 우선 아내가 겪을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내가 거의 꿈꿔보지 못했던 아버지가 된다는 두려움. 이건 아직도 왜 두려운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기사를 후딱 하나 쓰고 회사의 양해를 구한 다음 2시쯤 병원으로 달려갔다. 전화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아내는 이미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탯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오후4시22분까지 아내는 생애 마지막과 같은 고통을 겪었고, 나는 그 옆에서 다만 손을 잡아주고 움켜쥘 옷을 내주었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전쟁이라는 말밖에는... 극한의 고통이라는 말 밖에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다.

"아기 머리가 나왔어, 조금만 더 힘내"
예비 아버지는 이 말을 꼭 기억하시라. 나도 어디서 들은 말인데 산통을 겪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도움말이란다. 다른 말은 고통스러운 산모에게 짜증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실제로 아이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끝이 보인다는 환희를 느끼면서 절로 이 말이 나온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이 말을 들은 산모는 힘을 내서 마지막으로 힘껏 아이를 밀어낸다. 병원에 도착하고 약 5시간 만에 태어난 돌돌이는 세상에 나자마자 효도를 한 셈이 됐다.

나와 어디가 닮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발가락이 닮긴 한 것 같은데...
그리고 코는 아주 예술로 나왔다. 분명 내 건 아니고 아내의 코를 그대로 닮았다. 시원하게 찢어진 눈하며...
다만 좀 잘 먹어주면 아주 훌륭하겠다. 나나 아내나 어릴 적 찰랑찰랑하는 젖병 하나 물려주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먹어치워야 한숨 잠을 청하는 아기였으니, 곧 피가 무섭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건강하고 밝은 아이가 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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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숨 자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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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오똑한 콧날을 보시라

Posted by 좀스

[관련기사]불은 자장면, 물가도 퉁퉁 부나

중국집 주인도 배달원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비자 서민이라는 생각에서 시작한 기사입니다. 특히 화교분들은 과거 군사정권 시절부터 자장면값에 대한 애환을 갖고 있는데, 이런 부분도 다뤄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때가 때이다 보니 화교얘기보다는 물가 얘기로 귀결되었지만...
실제로 자장면은 시작이요, 업계에 따르면 설 이후엔 그야말로 식품가격 대란이 올 태세입니다.
가격을 올리든지, 아님 용량을 줄이든지, 자신들의 살길은 두 가지 밖에 없다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기업에 있으신 생산자 분들도 가정으로 돌아가면 소비자이니, 적당한 합의점을 찾았으면 합니다.  

여기 또 깨달음을 주는 댓글이 있네요.

우리나라는 1980년보다 못사는 구나.....
울아부지 그때 지방대 나오시고 대졸초임 월급 35만원 받았는디
짜장면값이 24배 버스비가 29배 올랐네
글면 대졸초임 월급이 최소 500만원은 넘어가야 되는디
요샌 지방대졸들 월200-250정도.......... (아이디 dhfroddl12)
물가상승분을 기업과 가계가 어느 정도는 품어안을 수 있겠지만, 그 격차가 너무 벌어질 때는 정말 문제죠. 정부는 물론 물가인상을 최대한 억제하는 것에도 힘써야겠지만, 어쩔 수 없이 인상해야 한다면 정부, 기업, 가계가 그 부담을 공평하게 나눠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겁니다.
대학교육비도 마찬가지 관점에서 보면, 대학과 학생의 부담이 지나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는 것 같아요. 예비 학부형으로서 개탄스럽기 그지 없습니다.


Posted by 좀스
올해 맥월드에서 스티브 잡스는 세계에서 제일 얇은 노트북을 발표했다.
이 노트북은 얇은 두께도 두께지만, 완벽한 무선 네트워크 환경을 전제했다는 점이 독특하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라, 그 전까지는 사용자들이 아주 불편해할 것만 같긴 하지만...
이 노트북을 보고 있으면,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네트 사회'가 이미 도래한 것만 같다.
함께 발표한 타임캡술도 마찬가지 컨셉이고,
정보는 이제 물리적인 단말기와 완전히 분리돼 점점 자유워지고 있다. 마치 육체와 분리된 '고스트'가 신체를 자유롭게 옮겨다니는 것처럼... 최근에 애플 키보드 구입해 반한 터라 심하게 감정이입한 듯하지만, 어쨌건 애플은 우리들의 시간을 리드하는 기업임에 틀림없다.

키노트를 하는 스티브 잡스와 그 추종자들은 대체로 보기 좋았다. 마치 콘서트에 온 것처럼 한 기업인의 발표에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석학의 강의를 듣는 것처럼 그의 입 모양에서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한국 같으면 안철수씨 정도가 비슷할까. 우리 대기업에서도 이 같은 경영자가 나올 수 있을까. 족벌과 군대식 서열체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과 실력만으로 CEO가 될 수 있는 때가 오면 가능하지 않을까...
 

Posted by 좀스

광고회사 TBWA의 그 유명한 카피라이터 박웅현씨가 중심이 돼 쓴 책.
단지 읽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보고 느낄 수도 있는 책이다.
광고쟁이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번뜩이는 순발력과 재치가 아니라,
사물과 세상을 '꿰뚫는 힘', 통찰력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삼청동은 ‘경륜’, 홍대앞은 ‘열정’, 인사동은 ‘전통’, 대학로는 ‘표현’, 청담동은 ‘과시’라고 한다면, 신사동 가로수길은 ‘로망’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정의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특히 흥미로왔던 장은 '베스트원 < 온리원'과 '헝그리정신의 종말', '가로수길의 국적은'
3개였다. 이제야말로 자신을 사랑하는 데 기반한 문화가 열릴지, 아니면 중국, 일본, 미국을 거쳐, 선망의 대상이 유럽으로 바뀌는 것일 뿐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껍데기가 무엇이건 중요한 건 사람들이 욕망하는 '알맹이'가 바뀌었다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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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TK님의 블로그(http://www.luckyme.net/tt/)


Posted by 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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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즌 브레이크 시즌3



공사다망하여 새해를 새롭게 맞지 못한 고로, 늦었지만 새해 이벤트를 생각하다 결국 지난 주말 프리즌 브레이크 시즌1을 모두 봤다. '달렸다'고 해야 하나?
이젠 나이가 들었는지 매회 터지는 돌발변수들을 따라가기가 버거웠지만, 20시간 가까운 노동이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을 정도로 재미가 있었다.

십여년 전 재수생 시절 한 비디오방에서 친구와 함께 봤던 '쇼생크 탈출'은 인생이라는 감옥에 대한 커다란 비유였다면, '프리즌 브레이크'는 미국사회의 부조리한 현실을 매우 구체적으로 건드리고 있다는 느낌이다.
'사형' 제도에서부터 시간당 14달러 받는다는 교도관까지... 드라마의 구석구석에는 미국사회에 대한 감독의 비판이 숨겨져 있다.

가장 섬찟했던 것은 전체적인 줄거리를 이끌고 있는 바로 '컴퍼니'의 존재. 선거자금을 누가 많이 끌어당기느냐가 승패를 좌우한다는 미국사회에서 너무도 현실적인 얘기기에 더욱 무섭다. '돈'이 국적을 초월할 때 기업과 정부의 균형관계는 깨질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가능성이 아닌 현실일지 모른다.  

또 하나. 언론의 역할과 정보의 문제. 사실 신문기사는 사회를 움직이는 실질적인 정보(진실?)와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엄청나게 양산되고 있는 요새 뉴스는 진실에 대한 끊임없는 단서일 뿐이다. 가능하면 진실에 더 가까운 단서를 보도하려고 노력할 뿐. 프리즌 브레이크에서도 뉴스는 "버로우즈가 무슨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았다" "버로우즈의 변호인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사형제도의 존폐를 둘러싸고 사회각계의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등만 전달한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진짜 컴퍼니가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블로그 뉴스가 무섭다. 블로거들은 저마다 해당분야의 '내부자'이기 때문이다. 먼 미래에는 신문이나 방송뉴스 기자는 사라지고, 블로거 뉴스를 컴퓨터가 자동편집해 뉴스를 생산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진실은 어쩔 수 없이 '끊임없는 과정'이므로, 끊임없이 의심하고 의지를 갖고 추적하는 '사람들'이 필요할 것 같다.

그나저나 시즌1의 마지막을 보니 시즌2를 시작해야 할지 심히 고민된다. 자칫 '네버엔딩스토리'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어떡할까. 어차피 '레이지어답터'인 나로서는 다음 여름휴가 때나 보지 않을까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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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없는 사진 시리즈- 런던 타워브릿지




2008 신년기획 '이제는경제다'를 마친 소감.

1. '이제는경제'라는 주제는 MB에게 보내는 러브콜이라는 한 댓글에 대해.
만일, 선거 전에 이 같은 기획기사가 나갔으면 할말이 없었을 것. 그러나 이미 선거결과가 나왔고, 선택의 올바름 여부를 떠나 민심이 '경제 좀 살리도'로 쏠려 있다는 것이 증명된 이상 의미있는 기획이라는 생각. 기사를 정확히 보면 알겠지만, '하려면 제대로 하라'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음.
 
2. '선진국'인가, '강대국'인가?
프랑스건 영국이건 무시할 수 없는 사실 하나. 그들의 '선진적인' 현재는 그만큼 자본을 모을 수 있었던 그림자(제국주의, 침략전쟁 등등)를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 유럽 특유의 복지나 분배시스템 역시 그런 큰 테두리 안에서 파악해야 함. 선진국이라는 말은 일직선적인 국가발전단계에서 상대적으로 앞서 있다는 뉘앙스인데, 제국주의 국가였고 전쟁으로 이윤을 축적한 바 있는 그들 국가와 한국의 케이스는 다름. 따라서 두루뭉술하고 일반적인 '선진국 벤치마킹'은 절대 있어서는 안됨.

3. 프랑스와 영국의 차이
국가개입 정도에서 가장 극과 극의 관계라는건 주지의 사실. 실제 눈에 먼저 띄었던 건 현금과 신용카드. 프랑스는 현금을 주로 사용하고, 신용카드는 아주 제한된 사람들(연봉 얼마 이상의 안정된 직장이 있고.. 등)만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금융산업 활성화에서는 다소 불리. (올해부터는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 도입 예정). 반대로 영국에서는 지하철 입구의 신문파는 간이 가판대에도 신용카드 리더기가 놓여있을 정도로 일반화. 그러나 이는 대량 신용불량자를 양산. 지난해에만 신용불량자 10만명. 집값버블(모기지 부실) 문제와 함께 영국경제에 암울한 전망을 던지고 있는 요인임.

4. 이제는 금융이다?
유럽 각국의 경제성장책의 화두는 모두 금융이었음.(프랑스 역시) KBS에서는 각국의 금융에만 초점을 맞춘 시사프로그램을 편성 방영했는데, 바른 방향이었다고 생각됨. 실질적인 성장과 생산의 시대가 지나고, 돈이 돈을 버는 시대로. 좀더 장기적이고 거시적 측면에서 명과 암을 다뤄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 자본주의 비판 서적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 볼 때.


#출국 4일전에 미션을 받고 부랴부랴 준비. 욕 먹을 정도의 결과물은 아니었다는 자체 평가. 작년에는 "이런 환경에서 일하고 생활하는 건 어떨까?" 같은, 또 다른 인생에 대한 상상이 있었는데, 올해는 일 자체에 매몰. 그러나 힘들어도 스폰서 없는 기획기사는 언제든 환영.
Posted by 좀스
최근 이명박 당선자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자주 비교된다.
박형준 의원은 최근 둘을 비교하며, "더 일하고 더 벌자"는 사르코지의 모토도 끌어다 쓴 바 있다.
실제로 추진력이나, 경제적 실용을 추구한다는 측면에서 둘은 상당히 비슷한 듯하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뜯어보면 중요한 차이가 있다. 특히 스스로 '실용'인사라고 자화자찬하는 인수위원장 인선을 보면서, 그들이 뭔가 착각을 해도 한참 착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파인 사르코지의 경우 내각에 좌파나 중도파 인사들을 많이 등용했다. 뿐만 아니라 흑인, 여성, 이민자 등 소수자들을 주요각료로 임명했다. 프랑스 우파에서 "우파에는 죄다 바보들만 있어서 좌파에서 인재를 끌어써야 하냐"며 불만을 터뜨릴 정도였다. 쇼일 수도 있겠지만, 좌우파를 막론하고 사르코지가 100년이 넘은 좌우갈등을 봉합하고 있다는 점에 이의를 달지는 않는다. 사르코지는 이같은 '탕평책'을 통해 좌우대립 완화라는 명분과 대통령 권한강화라는 실리를 모두 얻게 됐다.

그러나 이 당선자의 인선을 보면 자신의 정적(政敵)이라도 적극 등용하는 사르코지의 개방인사와 큰 차이가 있다. 실은 노무현정권의 '코드 인사'라고 그들이 비판했던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특히 이경숙 인수위원장의 경우 과거 독재정부에 협력했던 과오가 있음에도 '실용'이라는 명분을 들이대며 합리화시키고 있는데, 이는 세계적인 추세인 그 실용과는 관계가 없다.
사르코지 내각에 과거 나치정부와 협력했던 인사가 등용될 수 있을까? 제아무리 능력이 출중하다고 해도 말이다. 프랑스 국민들이 가만 두질 않을 거다. '평가'란 게 없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비애다. 교과서에는 군사정권, 쿠데타로 가르치면서 실제로는 거기에 협력했던 사람이 계속 승승장구하는 괴리. 우리한테 민주주의란 아직 오지 않은 거구나 하는 깨달음. 어찌됐건 이긴 사람에게 무릎꿇고 빌붙는 게 현명하다는 민초의 깨달음을 누가 어리석다 할 수 있을까?
또 한겨레 기사로도 나왔듯 이명박 당선자가 다니는 교회에서 많은 인사가 등용되고 있다. 이경숙 위원장도 마찬가지.
이 위원장도 이 당선자 말마따나 능력있어 보인다. 그러나 그가 학교를 키운 방식이 무엇인가. 독재자에게 빌붙은 공으로 국회의원이 되고, 그런 식으로 쌓은 인맥을 통해 학교를 키운 거 아닌가. 그런 후진적인 능력이 통하는 사회가 선진사회는 아닐거다. 아무리 땅덩어리가 좁기로소니...

능력만 있으면 도덕, 과거 이딴 거 구애받지 말자는 게 요새 추세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도덕이란 게 공자 맹자에 나온 도덕은 아니다. 예를 들어 진짜 좋은 재료 써서 가격만큼 튼튼한 건물 짓는 게 우리 시대의 도덕이다. 근데 요새는 사람들 속여 부실공사 해놓고 높은 가격 받아챙겨서 혼자 부자되는 게 옳다고 다들 얘기한다.
희한한 것은 자기가 그 희생양이 될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치 않는다는 거다. 이에 반해 다른 누군가의 피눈물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객관적이다.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 한국사회가 성장하려면 비정규직 해야지 생각하면서 그 여파가 자신, 혹은 자기 자식에게 갈 수 있다는 생각은 애써 피하는 거 같다.

프랑스와 우리나라는 다르다. 이명박과 사르코지는 확실히 다르다. 그러나 프랑스 시민과 한국시민은 닮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당신의 문제가 언젠가 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연대'의 정신만큼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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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