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마음의 준비가 안되는 일이 있나보다. 어릴 적 뜨거운 목욕탕에 들어가는 일이나 치과 가는 일, 낯 뜨거운 성적표를 부모님께 보이는 일이나 매를 맞는 일 등 지금까지 겁낼 만한 모든 일들은 어느 정도 미리 상상해보고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아이가 생긴다는 건, 도무지 준비가 안된다. 역시 나고 죽는 일은 사람의 영역 밖의 일인가보다.
31일 오전 11시 쯤 아기를 낳으러 분만실에 들어간다는 아내의 전화를 받고는 이내 겁이 나기 시작했다. 겁의 정체가 무언고 가만 생각하니, 우선 아내가 겪을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내가 거의 꿈꿔보지 못했던 아버지가 된다는 두려움. 이건 아직도 왜 두려운 건지 이유를 모르겠다.
기사를 후딱 하나 쓰고 회사의 양해를 구한 다음 2시쯤 병원으로 달려갔다. 전화할 때만 해도 멀쩡했던 아내는 이미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아기가 탯줄을 달고 세상에 나온 오후4시22분까지 아내는 생애 마지막과 같은 고통을 겪었고, 나는 그 옆에서 다만 손을 잡아주고 움켜쥘 옷을 내주었다. 생사가 오락가락하는 전쟁이라는 말밖에는... 극한의 고통이라는 말 밖에는... 따로 설명할 길이 없다.
"아기 머리가 나왔어, 조금만 더 힘내"
예비 아버지는 이 말을 꼭 기억하시라. 나도 어디서 들은 말인데 산통을 겪고 있는 아내에게 남편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도움말이란다. 다른 말은 고통스러운 산모에게 짜증만 불러일으킬 뿐이다. 실제로 아이의 새카만 머리카락이 보이기 시작하면 이제 끝이 보인다는 환희를 느끼면서 절로 이 말이 나온다. 그리고 남편에게서 이 말을 들은 산모는 힘을 내서 마지막으로 힘껏 아이를 밀어낸다. 병원에 도착하고 약 5시간 만에 태어난 돌돌이는 세상에 나자마자 효도를 한 셈이 됐다.
나와 어디가 닮았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발가락이 닮긴 한 것 같은데...
그리고 코는 아주 예술로 나왔다. 분명 내 건 아니고 아내의 코를 그대로 닮았다. 시원하게 찢어진 눈하며...
다만 좀 잘 먹어주면 아주 훌륭하겠다. 나나 아내나 어릴 적 찰랑찰랑하는 젖병 하나 물려주면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마지막 한방울까지 다 먹어치워야 한숨 잠을 청하는 아기였으니, 곧 피가 무섭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건강하고 밝은 아이가 되거라.
한숨 자는 모습
저 오똑한 콧날을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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